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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선교회 사진

1977년 3월초 문과대 앞에 가판대를 세우고 방인상(75)과 최원선(75)형제 둘이서 회원모집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첫날 최정구(76)형제와 최남순자매(CCC)를 만났다. 역시 뜻을 같이 하기로 했다. 이외 임성철 (76)목사등 많은 형제와 자매를 만났다. 그런데 예상외로 회원가입이 잘 안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과거의 운동권 서클로 인식이 안 좋았던 것이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냈다. 학자금 수납창구에 서서 같은 과 친구들이 등록금을 내려고 돈과 도장을 들고 오면 즉석에서 회원가입을 받았다. 그때는 사인이 안 되어서 반드시 도장을 받아야했다.

서클등록 기준은 회원 50명이상 가입을 받고 지도교수가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원가입은 다 되었는데 지도교수가 최대 문제였다. 업무과에서 크리스천 교수 명단을 받아 방문하기 시작했다. 마감시간은 다가오는데 아무 교수도 자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유교학교인데다 운동권 서클로 이미지가 나빠 전부 고사하는 것이 아닌가! 이 때 힘들면서 우리 모두는 생각했다. 새로운 기독학생회는 초교파이지만 반드시 보수적인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이제 토요일 12시 마감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힘이 빠져 울면서 기도했다.
"주님, 도와주세요. 복음의 불모지인 유교학교 성대캠퍼스에 복음을 심기 원합니다."

절망 중에 최원선(75)형제에게서 연락이 왔다. 최정구(76)형제와 친분이 있는 임한영교수님이 다른 서클을 포기하고 기꺼이 지도교수가 되어주겠다 연락이 온 것이다. 우리는 너무 기뻐 교수실로 달려가다 엎어지기도 했다. 교수실에 달려가보니 1방 3최들이 모여있었다. 하도 갖고 다녀서 너덜너덜한 서클 등록 서류를 펴서 교수님의 기명날인을 받았다. 기쁨의 순간이요, 감격의 순간이었다. 우리는 교수님 방에서 나와 모여 눈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토요일 11시 59분 업무과에 등록서류를 제출했다. 우리는 대성로를 내려오면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천하를 다 얻은 기분이었다..........며칠 후 1977년 3월 9일 "성균관대학교 기독학생회"가 동아리로 등록되었다. 할렐루야!

이후 성대기독학생회의 탄생을 알리는 대대적인 홍보와 더불어 한달간의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1977년 4월 1일(금) 문과대 교실에서 40여명이 모여 창립예배를 드렸다. 그날은 만우절이어서 예배후 여러 가지 농담으로 장난을 쳤던 기억이 바로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4월 중순 서클룸도 얻게 되었다. 문과대 남자 화장실이 폐쇄되어 룸이 하나 나왔다는 것이다. 룸이 없는 신설클럽 회장 3명이 업무과에 모여 제비뽑기를 했다. "제비뽑기는 하나님께 달렸다."고 우리 최회장이 당첨되어 룸을 얻게 되었다. 룸에 들어와보니 소변기를 뜯어낸 자국이 선명했다. 뜯기만 하고 마감을 안 해준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 변기자국을 보며 찬양을 하고 눈물의 기도를 올렸다. 소음 민원도 많았다. 특히 바로 앞에 사마헌(법대생 고시원)이 있어 민원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겟세마네는 황교안형제(77)를 위시해서 법대생이 많은 모양이다. (참고: 1977년 가을 Room 이름을 공모하여 조윤희(77 가관) 자매가 제안한 "겟세마네"로 결정하여 Room 명칭으로 사용하다가 이후 성균관대학교 기독학생회 를 "겟세마네"라 칭하게 됨)

그리고 4월 한달간 총회를 준비하였다. 우선 회칙을 작성하고 임원구성을 논의하며 연간 사업계획을 세웠다.

5월 2일엔 총회를 소집하여 회칙을 통과시키고 회장 등 임원을 선출하였다. 최원선(75)을 초대회장으로, 방인상(75)을 총무로 선출하였다. 이로서 성대 기독학생회의 조직과 틀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겟세마네 초창기엔 서클등록, 창립예배, 서클룸확보, 총회개최,임원선임 등으로 동아리로서의 모습을 하나하나 갖추어나갔다. 1977년 1학기 4개월은 우리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뜨거운 열정으로 보냈다. 아멘. 할렐루야!